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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함은 영적 침상과 같습니다.
  

편함은 영적 침상과 같습니다.

 

현대사회는 편함의 한계치를 넘어선 사회인 듯합니다. 두 다리가 있지만 다리의 기능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운 걷기를 포기한 삶의 구조 속에 이미 익숙함으로 길들어져 있습니다. 다리가 해야 할 일을 다리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게 하는 도구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편함의 울타리 안에서 쉽게 자라나는 각종 질병들이 사람의 삶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많은 사람들이 당뇨나 고혈압 그리고 비만 같은 육신의 잡초들이 쉽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 자신의 삶에서 이런 잡초 같은 성인병과 싸우느라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단맛은 맛의 제왕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절제하지 않으면 건강을 무너뜨리는 질병의 전위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절제하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잃게 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깨우치면서 사는 것이 지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몸이 편함에 길들어지게 되면 무엇보다도 자기의 몸이 자기 자신을 망가지게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운동선수나 농부는 자기 몸을 편함에 길들여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훈련하고 자기 육체를 고통의 한계점에 두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육체가 편함에 길들어지지 않아야 자신이 필요할 때에 가장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훈련이라는 것은 편함에 대한 도전과 같은 것이고 신앙생활이 운동선수와 같다는 것은 신앙생활은 안일한 삶에 대한 도전장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은 모든 순간 편함과 훈련이라는 사이에 서게 됩니다. 여기에서 편함을 선택하는 사람은 삶의 퇴보를 붙잡은 사람이고 훈련이라는 핸들을 잡은 사람은 새로운 신세계를 드라이브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편함에 길들여지면 그 자체가 바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편함은 신앙생활의 무덤과 같습니다. 성경은 일락을 사랑하는 자는 죽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장소가 바로 그를 침상에 던지는 것으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가장 무서운 자리가 바로 편함이라는 자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편함은 영적 생명의 임종을 맞이하는 침상과 같습니다.

[인쇄하기] 2020-02-16 12: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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