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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의 정신
  

제목:시작의 정신
본문:빌 03:12-16
분류:

자연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야성을 가져야 살 수 있습니다. 야성을 잃어버린 생명은 스스로 생존할 수 없습니다. 덩치가 얼마나 크냐, 얼마나 잘 생겼느냐, 얼마나 힘이 있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야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야성을 잃어버린 생명은 야생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야성은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절대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것입니다. 

사람의 삶에도 이러한 구도가 있습니다. 사람의 삶에서 젊고 늙고 하는 문제를 넘어서서 그 삶을 살게 하는 자세에 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삶의 자세가 있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성도에게 성도의 삶을 살게 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많은 칭찬을 하신 후에 한 가지 책망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했습니다. 촛대는 곧 교회라고 말씀이기 때문에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사랑인 것처럼 성도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자세가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바로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어떤 신앙의 자세로 주님을 섬기고 있는가를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고백하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시작의 정신입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쓴 말씀이기 때문에 옥중서신이라 부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했을 때에 나이는 60세 전후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시에 60세라고 하면 세상을 떠날 나이였기 때문에 노년의 세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노년에 기록한 말씀이지만 그 내용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의 몸은 늙었고 심지어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의 마음은 시작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2절 말씀에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이 말씀은 바울의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언제나 시작의 정신으로 주님께 충성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충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신앙생활 정신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정신은 언제나 시작의 정신입니다.

시작할 때의 그 마음가짐과 순수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초보자로 살라는 것이 아니고 미숙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 된다고 하더라도 시작할 때의 그 동기와 목적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람의 재능은 발전하지만 시작할 때의 그 목적은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시작의 정신을 잃어버림으로써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울 임금이 그랬습니다. 그의 시작은 너무도 귀한 인격과 믿음을 가진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가 왕이 되기 전에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에 진을 칠 때에 이 때 야베스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나하스에게 가서 우리가 서로 약조를 맺자 우리가 당신들을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이 때 나하스는 내가 너희들의 오른 쪽 눈을 다 뽑고서 너희와 약조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야베스 장로들이 우리에게 이레 동안 말미를 달라고 한 후에 전령들을 전국에 보내었는데 이 때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백성이 우는 것을 보고 마음에 의분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신에 감동이 되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으니 33만 명이 사울에게로 몰려 온 것입니다. 사울이 그 사람들을 3대로 나누어서 새벽에 암몬 사람들을 치매 암몬 사람을 완전히 이기고 암몬으로부터 야베스를 구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삼상 11장에 나오는 전체 내용입니다.

이러한 사울이 바로 삼상 15장에 보면 아말렉과의 전쟁을 하고 난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짐승을 남겨 두게 됩니다. 이 때 사무엘이 사울에게 와서 한 말이 사울이 시작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을 버렸다고 말씀했습니다. 

삼상 15:16-2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 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말씀하소서 [17]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 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타락은 처음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벧후 2:20-22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되라는 말씀은 미숙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시작의 정신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가 주님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시작 정신으로 신앙생활을 하느냐 하는 물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작의 정신이 바로 새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사는 비결은 시작의 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명이고, 그것이 창조적인 삶입니다. 
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사람이 처음에는 시작의 정신으로 살지만 시간이 지나면 시작의 정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처음부터 야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편리한 것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삶이 영적 훈련을 하지 않을 때에 그는 제자의 삶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람들이 처음부터 악한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악인의 얼굴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그러한 말씀입니다.

처음 정신으로 사는 자세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도 처음부터 주님을 팔기 위해서 주님을 따라 나선 것은 아닐 것입니다. 누구나 처음 정신을 잃어버리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광야 이스라엘)

직분을 가진 사람이 타락하는 모습도 처음부터 그런 악한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처음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점점 거치는 돌과 같은 사람이 되고, 처음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자신이 변질된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처음 정신으로 자신을 한 번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처음 회사에 입사를 했을 때를 생각해보고, 내가 처음 결혼했을 때를 생각해 보고, 내가 처음 자녀를 낳아서 키울 때, 내가 병들었다가 회복을 했을 때, 내가 직분을 처음 받았을 때, 그 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얼마나 변질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미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우리는 이미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생각할 때도 지금 부모님이 아니라 내가 어릴 때  나를 사랑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신 그 부모님을 생각해 본다면 그가 부모님에 대해서 바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2.성장과 성숙의 정신입니다.
13-14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성도는 처음 정신으로 산다고 해서 늘 어린아이로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늘 초보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지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정신으로 충성하라는 것이지 미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성도는 자신의 영적 성장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성장을 위해서 언제나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건강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가장 중요한 측도는 바로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믿고 충성을 많이 해도 성장하지 않으면 그것은 병든 것입니다. 건강한 삶이 아닙니다. 성장하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성장과 성숙을 포기하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늘 영적 성장과 성숙에 내 삶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랄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인쇄하기] 2016-07-30 16:3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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