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우목사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어린이
  

제목: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어린이
본문:시 122:01-09
분류:어린이주일

누구에게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삶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을 보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경력을 많이 가졌느냐 하는 것을 보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느냐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교육이란 두 가지 측면에서 사람의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하나는 지식이나 재능을 키우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마음 속에 가치관을 키우는 것을 말합니다. 가치관을 키운다는 것은 사랑해야 할 것과 사랑치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고 참아야 할 일에 참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고 기다려야 할 때에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의 교육은 지식이나 재능을 키우는 과정이기보다는 마음 속에 가치관을 키우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교육은 가치관을 키우는 과정은 생략된 채 지식과 재능을 키우는 과정을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은 사람의 삶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머리만 키우기 때문에 결국 사람의 인격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재주를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교육도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 교육을 보면 역시 두 가지 측면에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적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 가는 과정으로써 교육입니다. 성경을 배우고 예배를 배우고 찬송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교육의 목적이 아닙니다. 사람이 종교적 지식과 경험을 가졌다고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교회 교육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과정으로써 교육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사람으로 변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인생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훈련하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교회 교육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에 대해서 지식을 가진 인생보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교회 교육인 것입니다.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아느냐 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1. 성전을 사랑하는 어린이가 되게 해야 합니다.
성경에 다니엘은 소년 시절에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접어야 했습니다. 생존 자체가 삶이 되어버린 사람에게는 다른 목적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질병으로 사형 선고를 받는 사람에게는 옷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명예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집이 크고 작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말 큰 삶의 문제를 만난 사람들은 삶의 작은 문제 앞에서 오히려 자유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큰 주제가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다니엘을 보면 하나님 사랑과 성전 사랑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였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교회는 성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구약의 신앙인들은 하나님 사랑을 자녀들에게 가르칠 때에 성전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바로 다니엘이 배운 신앙교육의 내용입니다. 다니엘이 어릴 때에 하나님 사랑을 배울 때 성전 사랑으로 배운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배운 신앙교육의 내용도 그렇습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성경에 엘리 제사장은 자녀들에게 제사는 가르쳤지만 성전 사랑은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성전에서 아무리 직분을 가졌다고 해도 성전 사랑을 배우지 못하면 하나님 사랑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성전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먼저 성전 사랑은 어릴 때부터 성전에서 기도하는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신앙 교육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교육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성전을 사랑하는 가장 귀한 훈련인 것입니다. 성전에서 홀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그 어린이는 자기 신앙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반대로 성전에서 홀로 기도하는 경험이 없는 사람은 성전과 자신의 고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전사랑을 가르치려면 어릴 때부터 주님께 드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사랑을 가르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드리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드리는 일은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주님이 베다니에 있을 때 마리아는 300데나리온이나 하는 값비싼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이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지만 주님은 이 여인의 섬김을 주님 사랑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아이가 되게 하려면 친구에게 주는 훈련을 시키면 됩니다.

철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던 어린이가 자신이 먹을 것을 사먹을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는 모습들을 볼 때 이 아이가 드디어 하나님을 사랑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드리는 모습을 통해서 인생은 사랑을 나타내기 때문에 무엇보다 드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얻기만 하던 아이가 어느 날 부모님에게 드리는 모습을 보일 때에 성장한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를 통해서 얻는 것에 익숙한 아이가 되게 하면 안됩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물을 가로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한 죄였습니다. 과거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그 때에는 먹을 것이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먹을 것은 주님의 사랑을 베푸는 방식이었습니다. 명분이 없이 얻는 것은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성도에게 드리는 기쁨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리는 기쁨에 집착을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전을 통해서 장사하는 자들을 향해서 강도의 굴혈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면 이들도 성전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성전을 통해서 내가 이익을 보려고 한다면 이것은 자신에게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성전을 통해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던 아이가 있었고 성전에서 어릴 때부터 특혜를 누렸던 사람이 있습니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성전을 통해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을 양육할 때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을 받는 원리입니다.

2.성전에서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 어린이가 되게 해야 합니다.
성전을 통해서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성전을 통해서 섬김의 삶을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이다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표준새번역에 보면 "내 친척과 이웃에게도 평화가 너에게 깃들기를 빈다 하고 축복하겠다"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가장 먼저 가져야 할 자세는 관게가 평화가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평화라는 말은 살롬이라는 말입니다. 성도의 모든 교제는 바로 살롬이 되어야 합니다. 살롬이라는 말은 행복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함께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 바로 살롬입니다. 살롬이라는 말은 정다운 이라는 말입니다. 정이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살롬이라는 말은 안전하다는 말입니다. 함께 있으면 든든한 사람을 말합니다.

(잠 18:24)『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고 했습니다. 주일학교 교육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는 믿음의 친구를 만드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와 같은 믿음의 친구를 만드는 것이고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함께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게 될 동역자를 만나는 곳입니다.(중국-선교사님, 찾아서 좋은 친구)
[인쇄하기] 2008-10-17 08: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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