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우목사
  최선의 삶이란
  

제목:최선의 삶이란
본문:창 39:01-06
분류:

사람들을 보면 다같은 지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의 얼굴만 보더라도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참으로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의 외모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삶도 동일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시간의 양은 비슷 비슷하지마는 동일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야곱에게는 열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두 명 중에 동일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요셉입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특별한 아들이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특별한 옷을 입고 특별하게 취급된 아들이었습니다. 이 특별한 아버지의 관심 때문에 다른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상반된 삶을 많이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선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경험도 있고 가장 큰 미움을 받은 경험도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모함을 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깊은 신임을 받은 경험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종의 신분으로 살아 본 경험도 있고 세상에서 높은 신분으로 살아 본 경험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위대한 점은 언제나 동일한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먼저 요셉의 믿음이 동일했습니다. 사랑 받을 때나 미움을 받을 때도 요셉의 믿음은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함을 받을 때나 신임을 받을 때나 그는 삶의 정신은 언제나 동일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의지하지 않았음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은 가장 천한 자로 살아갈 때나 가장 높은 신분으로 살아갈 때나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동일했습니다.

요셉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종살이를 할 때에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성경은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입게 하시매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는 요셉을 보면서 이와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했습니다.

다음으로 요셉의 삶은 사람에게 신임을 받은 삶이었습니다. 요셉과 관련된 사람들을 보면 우선 아버지가 있고 다음은 형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가정이 있었고 다음은 감옥에서 만난 왕의 신하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애굽 왕이었던 바로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런 다양한 사람들을 대하면서 언제나 동일한 모습으로 대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두 가지의 신임과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신임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임을 받지 못하는 인생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실패자가 됩니다. 요셉의 이야기에는 항상 하나님이 요셉을 위하여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셉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할 때 내가 어찌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사람의 신임을 받아야 합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모든 소유를 위임했습니다. 이것은 가정의 일에 대한 전권을 요셉에게 주었다는 말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상전에게 신임을 받았습니다. 오늘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자신의 직장 상사에게 일에 대한 신실성은 신임을 받아야 합니다. 요셉은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감옥을 관리하는 사람이 옥중의 죄수를 다 요셉에게 맡길 뿐 아니라 모든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게 하고 요셉이 한 일라면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요셉의 삶을 보면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1. 어디에 사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삶에는 어디에 사느냐에 목적을 가진 사람이 있고 어떻게 사느냐에 목적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요셉은 어디에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보여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보여 주신 중요한 가르침은 사람이 어디에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지금까지의 삶은 어디에 사느냐 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디에 사느냐에 관심이 많습니다. 즉 삶의 환경이 삶의 태도보다 중요한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집에 사느냐가 어떤 생활을 하느냐 보다 더 크게 생각합니다. 어떤 직장에 다니느냐가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 중요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돈을 받느냐가 얼마나 보람된 일을 하느냐 보다 더 우선되었습니다. 그래서 삶의 환경을 가꾸는데 평생을 노력하면서 삶의 조건을 경쟁하며 그것을 성공의 잣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쟁은 인간 삶을 점점 황폐화시키고 있습니다. 삶의 조건보다 삶의 가치관이 하나님 앞에서는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나와서 멸망한 이유가 삶의 행복을 어디에 사느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했기 때문에 동일한 상황 속에 살면서도 더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위대한 사람들은 어디에 사느냐 하는 것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삶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어떻게 사느냐에 삶의 초점을 두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너무도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던 링컨이나 정규학교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던 프랭크린이나, 기계 공원 출신으로 자동차를 만든 포드나 차거운 지붕밑 다락방에서 쥐들과 더불어 살았던 디즈니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사느냐에 삶의 초점을 맞추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요셉은 어디에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삶의 무게를 두었기 때문에 삶의 환경이 전혀 다른 곳에서도 언제나 동일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 역시 어디에 사느냐 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그는 어떻게 사느냐에 자신의 삶에 의미를 두었던 것입니다. 성도의 삶이 세상 사람과 구별되는 내용은 세상은 어디에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2. 상대가 누구냐 하는 것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합니다.
요셉이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요셉에게 좋은 사람이 못되었습니다. 형님들에게 팔렸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옥에서 만난 왕의 신하도 남자답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요셉에게 필요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요셉이 그들에게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날 때 상대가 누구냐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보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요셉은 누구를 만나도 하나님은 그 사람들이 결국 요셉에게 복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상대가 악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헤칠 수는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른 모습을 지키게 되면 상대의 악함까지도 내게 복이 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깊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상대가 악할수록 그것이 자신의 믿음이 더 크게 드러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

다윗은 자신을 미워하는 많은 대적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다윗에게 고통을 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윗에게 아픔은 주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윗을 위한 도구가 된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신이 상대방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물음을 언제나 가지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인쇄하기] 2007-08-09 11:18:38


   


관리자로그인~~ 전체 281개 - 현재 4/19 쪽
번호
제목
이름
파일
날짜
조회
236 조병우목사 2009-07-05 1982
235 조병우목사 2008-10-17 3094
234 조병우목사 2008-10-17 2140
233 조병우목사 2008-10-17 1770
232 조병우목사 2008-10-17 1732
231 조병우목사 2008-10-17 1232
230 조병우목사 2008-10-17 1266
229 조병우목사 2008-10-17 1130
228 조병우목사 2008-10-17 1406
227 조병우목사 2008-10-17 1378
226 조병우목사 2008-10-17 1320
225 조병우목사 2008-10-17 1377
224 조병우목사 2007-08-09 2033
조병우목사 2007-08-09 1965
222 조병우목사 2007-08-09 1683
[1] [2] [3] 4 [5] [6] [7] [8] [9]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