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우목사
  영혼의 추수
  

제목:영혼의 추수
본문:시 39:04-07
분류: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인생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인생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개발하는 면에서는 유익하지만 약점을 보지 못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반면에 인생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보는 면에는 유익하지만 장점을 보지 못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체내에 있는 기질을 네 가지로 나누고 각각 그 이름을 붙였는데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 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팀 라헤이라는 사람이 기본으로 성령과 기질이라는 책으로 내었는데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을 이 네 가지 기질로 분류해서 해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는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질로 사람을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다윗을 보면 모든 기질을 다 가진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는 신중하기도 하고 때로 덜렁대기도 합니다. 그는 인생을 낙관적으로 보기도 하고 때로 인생을 비관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은혜를 받으면 모든 것이 다 장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신중한 것도 장점이 되고 성격이 급한 것도 장점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람이 믿음이 약해지면 모든 것이 다 단점이 되는 것입니다. 성격이 신중한 것은 소심한 것이 되고 성격이 급한 것은 언제나 실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의 인생관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나름대로의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삶을 생각할 때에 삶의 종말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인생을 생각할 때에 연약하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했습니다. 다윗은 인생이 육체로 얻은 것이 별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인생은 죄의 권세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인생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는 인생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간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나이를 묻는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자신의 나이를 말하면서 나그네 길이라고 말하면서도 험하게 보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인생을 품꾼으로 묘사하면서 품꾼이 저녁을 기다리는 것처럼 품꾼같이 그 날을 마치게 하옵소서 했습니다.

다윗은 한 인생의 모습을 두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생은 연약하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이 약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연약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다윗은 자신의 소망이 주님께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인생의 존재 자체에 대한 깨달음이고 둘째는 인생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인생의 연약함은 인생이 짧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인생의 삶의 길이에 대한 가르침은 삶의 길이가 짧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성경은 인생의 삶의 길이를 하루살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혹은 한해 동안 자라다가 베어지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인생이 그 짧음으로 인해서 무엇이든지 다 별것이 없습니다. 인생의 명예도 짧고 인생의 아름다움도 짧고 인생의 힘도 짧고 인생의 영광도 짧은 것입니다. 다윗은 인생의 짧음을 손 넓이 만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바로 그 작은 손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작은 손이 인생의 삶을 먹이고 지키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은 영원하신 하나님께 비하면 없는 것 같다는 표현 방식은 참으로 구체적입니다.

다음으로 다윗은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어떠함을 알게 하사 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인생의 약함을 표현할 때 인생은 죽음 앞에서 무력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인생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생에게 죽는다는 것은 가장 보편적인 일이면서 가장 특별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이 지구 위에 사람들이 하루 120만 명 이상 죽습니다. 매초 30명 이상이 죽습니다. 대 도시 하나가 없어집니다. 이 죽음은 사고나 어떤 재해로 인하여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죽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인정이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돌아보게 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임을 알게 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사람의 결국이 다 이와 같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개인의 삶을 뒤 돌아보면 죽을 뻔 한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죽음 앞에 서 본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죽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신의 날을 계수하는 지혜를 얻도록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인생이 죽음을 배워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연약함을 배울 때에 비로소 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자기 인생이 짧다는 사실을 알 때에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죽는다는 사실을 알 때에 강해지는 것입니다. 가끔 어떤 분들이 엄청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봅니다. 대개는 연세가 드신 분들입니다. 내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사람은 진짜 용기와 담대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는 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에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이 하나님을 믿으면 생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은 연약하지마는 그 연약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짧음을 알기 때문에 영원한 시간과 만나게 되고 죽음에 대한 진정한 수용이 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짧음을 아는 사람이 영원을 사모하게 되고 죽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세상에서 제멋대로 살던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에 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을 주님께 맡기는 생을 살아가는 사람이요 그리스도를 바로 믿는 사람은 짧음을 붙잡고 떠는 인생이 아니라 그 짧음을 영원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연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의지하고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내게 대해서 아무 것도 책임지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연약함을 깊이 깨닫는 만큼 자신이 그리스도 앞에서 강해져 가는 것을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인생은 결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었던 삶의 진실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인쇄하기] 2007-08-09 11: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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