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우목사
  전도
  

제목:전도
본문:막 01:35-39
분류:기도, 전도

성공한 사람들은 네 가지 특징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첫째는 삶의 우선 순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이고 중요한 것을 먼저 할 줄 아는 용기를 말합니다. 둘째는 시간 활용의 지식이 바르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시간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면서 자신의 시간에서 낭비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목표와 계획을 잘 세운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목표를 만들면 그 목표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목표가 없으면 방랑자이지만 목표가 있으면 순례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넷째는 협동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비결 가운데 하나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도 영적으로 볼 때 소비적인 시간이 있고 생산적인 시간이 있습니다. 쾌락은 소비적인 시간이고 기도시간은 생산적인 시간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소비적인 시간관리를 하는 사람은 결코 영적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생산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워 보이는 사람입니다. 바울 같은 사람은 먹고 마시는 것까지도 주의 영광을 위한 시간으로 가꾸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영적 목표를 바로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한 계획을 가진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최선의 자리에서 언제나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정말 인생을 가치있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지적과 같이 어리석은 인생은 자기만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협동심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 자신이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타인에게 유익을 줄 수 있어야 자신도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어리석을 만큼 손해를 주고 반대로 타인에게는 유익을 주는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한 알의 밀이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그러했고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도 보면 이러한 특징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역에는 언제나 중요한 것에 대하여 확실한 기준이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를 대하는 주님의 태도에서 그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역에는 소비적인 시간이 없습니다. 모든 시간이 다 생산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새벽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가꾸신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언제나 함께 사역을 감당하신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주님께 붙잡히면 어부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위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한 계획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맞이하여 먼저 회당에서 설교하시고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시고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그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시고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매우 피곤한 사역입니다. 마음을 쏟지 않으면 할 수 없기 때문에 육신적 피곤함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다음의 사역을 위해서 새벽에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기도시간이 끝난 후에 전도하시러 나가셨습니다. 주님은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해서 왔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신 후에 전도하시기 위해서 동리로 나가심으로 자신이 기도하신 목적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도의 중요한 의미가 해석이 되어 집니다. 기도가 정말 중요한 것은 기도는 전도를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기도하신 후에 전도하러 나가시면서 내가 이를 위하여 왔다고 하심으로 기도의 의미가 해석되어 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 자체도 중요하지마는 기도의 결과들이 너무도 귀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내용은 복음을 전하는 한가지였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목적이 복음을 전하는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딤후 4:2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그 일을 하게 하시는 방편이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먼저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입니다. 교회의 존재의 목적이 복음을 전함으로 이 땅에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영혼구원이 교회의 본질이고 다른 것은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인 것입니다. 주님은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병자들을 고치고 배고픈 자에게 떡을 먹이셨지만 그것은 주님 사역에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교회들이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세계 교회 협의회에서 한때 구원에 대한 이해를 잘못한 적이 있습니다. 구원을 해석하기를 굶주린 사람에게 구원은 빵이고, 갇힌 자에게 구원은 석방이고, 억압받고 눌린 자에게 구원은 자유와 해방이라고 하는 해방신학이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궁극적으로 한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따르는 것이 병 고침과 이적과 구제와 봉사활동 등이 있습니다. 모두 영혼 구원을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병 고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은 병원에서 고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구제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구제는 교회가 아니어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교회가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아니면 인간이 구원 얻을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주님의 사역과 교회의 사역은 동일합니다. 주님께서 그 사역을 교회에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우리의 한 평생 한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 사람은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말씀하는 사람들 가운데 충성하는 것이 교회 안에 국한이 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한 영혼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요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시기를 원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에 전도에 대한 두 가지 중요한 행동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32절 말씀에 예수님께 데려 오니 하는 말씀과 38절 말씀에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해서 왔노라 하셨습니다. 여기에 온 동리 사람들이 주님 앞에 모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온 갈릴리로 다니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전도란 사람을 주님 앞에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내가 병을 고치고 내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을 주님 앞에 데리고 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까운 마을로 다녀야 합니다. 주님은 한 평생 동안 자신의 시간을 복음을 전하시는 일에 온전히 드리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 주님 앞에 서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코리안 프런티어 라는 잡지사에서 설문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현재 당신의 현재 종교가 무엇이냐는 질문 농부의 7%정도만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종교를 가진다면 이라는 물음에는 농부의 34%가 기독교를 가지겠다고 했습니다. 사업가 48%, 대학교수 54%가 종교를 가진다면 기독교를 가지겠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마음으로는 복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 선교의 도구입니다. 선교의 도구가 아닌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각색 병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병에 걸렸든지 다 선교의 기회였고 선교의 도구였습니다.

양말은 160여년 전쯤에 밀입국한 프랑스 선교사들이 갖고 들어온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양말은 신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교용으로 큰 몫을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작은 양말을 보던 사람들이 저 작은 것에 어떻게 발이 들어가나 했는데 어른도 아이도 양말을 신을 수 있는 것을 볼 때 믿음에 대한 설교를 했다고 한다. 양말이 모든 사람이 다 신을 수 있는 것처럼 믿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고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양말도 선교의 도구였습니다.
[인쇄하기] 2007-08-09 11: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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